커피볶는 여인들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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커피볶는 여인들
  • 박신원 기자
  • 승인 2016.08.23 08:37
  • 댓글 1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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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녀의 이름은 엄마다. 내가 세상에 나올 때부터 엄마라 불렀으니까. 옷을 잘 못 입으면 못 입는 엄마. 요리를 잘 하면 요리 잘 하는 엄마. 먹고 싶은 것이 생기면 좀 만들어 달라고 얘기하는 엄마. 갖고 싶은 것이 있으면 사달라고 서슴없이 말 할 수 있는, 엄마 이 외에 누군가의 딸이었을 소녀였을 예쁜 아가씨였을 그녀의 모습은 내게 없었다.

그러던 어느 날, 오래 된 상자 하나를 발견했다. 엄마의 상자. 잡동사니며 편지, 사진들이 쌓여있는. 호기심 어린 손길로 그 상자에 담긴 물건들을 하나하나 꺼내봤다. 그리고 그 속엔 다른 이름의 그녀가 있었다. 갓 시집 온 새댁으로 이것저것이 모두 새로웠을, 갑작스러웠을 그녀의 고충이 담겨있었고 꽃다운 나이, 한 남자의 지극한 구애를 받는 한 여자가 있었다. 해외로 일하러 간 형부와 편지를 주고받는 처제가 있었고 착하고 어른을 잘 모시는 조카가 있었다. 여행을 즐기고 전시와 음악을 사랑하는 한 소녀가 있었다.

너무도 당연한 사실인데 내겐 충격적으로 다가왔다. 단 한 번도 그녀를 엄마 아닌 다른 시각으로 바라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.

이번에 만난 <까페무띠>의 최수연 대표도 엄마의 이름으로 가정을 꾸리다가 다시 꿈꾸는 한 여인으로의 삶을 시작했다. 최수연으로 불리기보다 누군가의 엄마로 불리며, 그녀 자신의 흥미와 커리어를 뒤로한 채 엄마의 시간을 살아갔던 그녀. 자녀가 어느 정도 자란 후 못 다 핀 그녀의 열정을 피우기로 했다.

그리고 지금 주 60여명의 엄마들이 그녀의 가게에서 로스팅을 배운다. 커피향을 좋아하는 한 사람으로, 시시각각 달라지는 커피 향과 원두의 매력에 푹 빠져있는 그들은 로스터로 불리운다. 꼭 직업이어야 하나? 커피를 볶는 사람이면 모두 로스터다. 최 대표는 15년간 쌓은 커피 노하우를 그대로 되물림 하며, 엄마라는 이름 말고 다른 이름을 싹틔운다.

<카페무띠>에선 60명의 여인들 가슴속에 잠자던 꽃봉우리들이 하나씩 터지고 있다. 한 점포를 꾸려 가는데 더 해 수많은 엄마의 열정을 꽃피우는 그녀에게는 꿈의 향기가 묻어난다. 커피 볶는 여인들. 그녀들의 이름은 엄마가 아니다.
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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지유리 기자 2016-08-28 16:11:42
<까페무띠>의 커피볶는 여인들 그 이후의 이야기가 기대되네요.
솔직한 감성이 묻어난 글 잘 읽었습니다.^^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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